작년 여름, 열매 달린 채로 온 3년생 묘목
작년 여름, 블루베리를 키워보고 싶어서 3년생 묘목을 하나 구입했다. 어린 모종부터 키우는 것보다는 이미 자리 잡은 나무를 들이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배송 왔을 때부터 이미 꽃이랑 열매가 몇 개 달려있는 상태라, "이 정도면 올여름에 바로 몇 알 따 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키우는 곳은 아파트 베란다가 아니라 단독주택 2층 테라스다. 지붕 없이 트여있는 공간이라, 사실상 노지에서 키우는 거랑 비슷한 조건이다.

며칠 만에 열매가 하나둘 사라졌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 분명 어제까지 있던 열매가 하나둘 없어지는 거다. 처음엔 내가 헷갈렸나 싶었는데, 계속 개수가 줄길래 자세히 살펴보니 범인은 새였다. 옆 빌라 나무에 상주하는 새들이 열매를 야금야금 따 먹고 있었던 거다.
억울한 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며칠 뒤 주차해둔 차를 봤는데, 보라색 얼룩이 여기저기 묻어있었다. 블루베리를 먹은 새가 우리 차 위에서 그대로 배설을 하고 간 거였다. 열매 뺏긴 것도 서러운데 세차까지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야말로 이중고였다.

결국 그해 여름엔 블루베리를 한 알도 못 먹고, "그래, 내년을 기약하자"는 마음으로 겨울을 났다.
분명 월동 가능하다고 했는데, 가지가 죽었다
문제는 겨울이 지나고 나서였다. 구입할 때 분명 월동이 가능한 품종이라고 안내받았는데, 노지랑 다름없는 테라스에서 겨울을 나 보니 얘기가 좀 달랐다. 봄이 되고 보니 가늘게 뻗어있던 가지들이 상당수 말라 죽어있었다. 굵은 원줄기 쪽은 그나마 버텼지만, 가는 가지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한 것 같았다.
지붕 있는 베란다였으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트인 테라스에서 겨울을 나 보니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나무라는 걸 깨달았다. 다음 겨울엔 가는 가지라도 부직포로 감싸주든지 해서 보온을 좀 더 신경 써줘야 할 것 같다.
올해 6월, 드디어 새싹이 났다
겨울에 그렇게 가지가 죽어나가는 걸 보고 살짝 포기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다행히 원줄기는 살아있었는지 올해 6월이 되어서야 새순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막 가지가 뻗어나가는 단계라, 아직 꽃도 열매도 없는 상태다. 이 속도면 올해도 열매 구경은 못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래도 작년처럼 아예 없어지는 것보다는, 천천히라도 자라는 걸 보는 게 낫다 싶어서 요즘은 마음을 비우고 지켜보고 있다.
독초인 줄 모르고 애지중지 키웠던 잡초
블루베리 화분에도 어김없이 잡초 사건이 있었다. 새순이 올라올 때쯤, 화분 한쪽에서 낯선 싹이 하나 자라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이게 블루베리 새싹인 줄 알고 나름 정성껏 돌봤다. 물도 신경 써서 주고, 옆에 있는 다른 잡초는 뽑아도 얘는 살려뒀을 정도다.

그런데 점점 자라는 모양이 블루베리랑 너무 달라서 찾아봤더니, 미국자리공이라는 독초였다. 애지중지 키우던 게 알고 보니 독초였다는 사실에 꽤 놀랐고, 바로 뽑아서 정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식물 키우면서 정체 모를 싹이 나면 일단 검색부터 해보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싶다.
지금 상태
- 원줄기: 트인 테라스에서 겨울을 버티고 살아남음
- 가는 가지: 대부분 동사, 올봄에 정리
- 새순: 6월부터 나기 시작, 현재 성장 중
- 올해 수확: 사실상 기대하지 않는 중
작년엔 새한테 열매를 뺏기고, 올해는 겨울 추위한테 가지를 뺏겼다. 그래도 원줄기가 버텨준 덕분에 다시 새순이 올라오고 있으니, 이번엔 새한테도 뺏기지 않고 무사히 여물 때까지 지켜보고 싶다. 안 되면 그건 그것대로 내년 이야기로 남겨두려 한다.